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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법학원] 정재민 법무심의관, “아직 법이 채우지 못한 사회의 여백 바라보면서, 법이 미래를 여는 열쇠 될 수 있다고 느껴”

작성일
2021.11.29
조회수
1786
내용



한국법학원이 지난 1122, 올해 두 번째 법률가가 된 뜻을 되새기는 강좌에 정재민 법무심의관을 강사로 초청하여 웨비나를 진행했다. 사법연수원을 32기로 수료하고 2006년 대구지법 판사로 임관한 정재민 법무심의관은, 판사로 근무하는 동안 다수의 소설을 발표하고 세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는 등 소설 쓰는 판사로도 널리 알려졌다.

 

권오곤 한국법학원장은 정재민 법무심의관은 독도에 관한 한일 간 국제법적 쟁점을 현실감 있게 묘사한 독도인더헤이그덕분으로 외교부 독도법률자문관으로도 근무했으며, 그 인연으로 제가 재판관으로 근무하던 유엔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에서 펠로우로 근무하기도 하였다고 전하면서, “ICTY 근무를 마치고 의정부 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하던 중 방위사업청으로 전직하여 여러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가, 현재는 법무부 법무실 법무심의관으로서 여러 중요한 법안을 심의하고 제출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그를 소개했다.

 

정 법무심의관은 이날 법원, 법무부, 국방부, 방위사업청, 외교부 등 다양한 곳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속과 업무에 따라 법과 정의를 보는 시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또 미래사회의 법과 정의는 어떻게 정의되고, 그 속에서 법조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법무심의관의 일법안 꼼꼼히 살펴 입장 내고, 정부안 만들어 제출

 

정 법무심의관에 따르면, 법무심의관실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회의원들이나 다른 정부부처가 만든 법안을 심의하는 일인데, 법안을 꼼꼼히 살펴본 뒤 정부를 대표해 찬성/반대/조건부 반대와 같은 법적 입장을 국회나 관련 부처에 내는 것이다. 그는 현재 한 달에 오백여 건의 법안을 심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두 번째는 법안(정부안)을 만드는 일이다. 법무심의관실은 올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민법 개정안, 중대한 부양의무를 위반한 사람의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하는 상속권상실제도 법안(이른바 구하라법)을 국회에 제출했고, 민법상 유류분 권리자에서 형제자매를 삭제하고, 독신자도 친양자 입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민법 개정안도 입법 예고했다. 또한 아동학대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민법에서 친권자의 징계권 조항을 삭제한 법안, 전국의 공익법인을 총괄하는 시민공익위원회 설치를 위한 공익법인법 전면개정안, 코로나로 폐업한 상가임차인을 위한 임대차해지권을 신설하는 상가건물임대차법 개정안, 일정 규모 이상의 집합건물에게 회계감사를 받도록 의무화하는 집합건물법 개정안 등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는 이미 만들어진 법을 구체적인 사건에 적용하는 판사의 일은 현재 하고 있는 법무심의관의 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면서, “피자 만들기에 비유하자면, 판사의 일은 주어진 레시피 대로 피자를 만드는 것이라면, 법안을 새로 만드는 일은 피자 자체를 만든다기보다 피자용 레시피를 새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의 성격이 이렇게 다르다 보니 같은 법률가이지만 법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는 게 그의 말이다. 판사일 때는 현재 존재하는 법들을 면밀하게 디테일까지 살폈는데, 법무심의관은 현재의 법이 아니라 아직 법이 되지 못한 법안들, 나아가 아직 법으로 채워지지 않은 우리 사회 각 영역의 공간적 여백들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정 법무심의관은 건물로 치면 판사는 현존하는 건물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활용하는 데 힘을 쓰지만, 법무심의관은 건물 옥상에 몇 층을 더 쌓아 올린다거나,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는다거나, 건물 주변 터를 활용해서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을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표현했다.

 

법이 미래 견인하는 힘 가져...‘미래시민사회 준비모토로

 

이처럼 그가 미래를 고민하게 된 건 자연스러웠다는 게 정 법무심의관의 말이다. “과거의 사건이 기존의 법체계에 위반하지 않았는지를 판단하는 판사로 일하면서는 법이 기존의 체제를 지키는 수호자 같은 보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만 인식했는데, 법무심의관이 되어 새로운 법안을 만들거나 심의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는 이윽고 법이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런 생각에서 그가 작년 11월에 법무심의관으로 부임한 직후부터 법무심의관실 안팎에 내세운 모토는 미래시민사회 준비. 정 법무심의관은 법을 개정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법이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 법이 제시하는 청사진을 따라 재배열하면서 미래를 견인하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경험하고 그 힘을 느끼게 되었다면서 그렇다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선도하겠다라는 것보다는, 적어도 법이 급변하는 사회의 발목을 잡는 일은 최소한으로 줄여 보자는 데 방점이 있다고 했다. 이러한 모토 아래 법무심의관실이 제시한 키워드는 비대면시대, 1인가구, 인간과 생명존중, 가족관계 변화, 인공지능과 로봇, 데이터혁명, 디지털 계약등이다.

 

특히 지난 달에는 법학자뿐 아니라 SF작가, 철학자, 경제학자, 미래학자 등으로 구성된 미래시민법포럼을 출범하여 인격권, 디지털 계약, 데이터 관련 민법, 인공지능 책임과 같은 미래 이슈에 직결된 법안을 구상 중이다. 정 법무심의관은 이미 독일은 올해 민법 개정으로 디지털 계약 관련 조항을 민법에 대폭 삽입했고 유럽 전체가 가이드라인이 발령되어서 디지털 계약을 입법화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데, 우리 민사법도 시대변화를 빨리 좇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을 통해 정의의 존재 증거하는 일, 법기술자와 진정한 법조인을 구별지을 잣대

 

정 법무심의관은 법과 정의의 문제와 관련하여, “법조인들은 법이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라고 생각하지만 일반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운을 뗐다. 대다수 국민은 정의는 법을 떠나서 존재하고 또 실현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부분이 법조인과 법조인이 아닌 일반 국민들 간에 존재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며, “(따라서) 법조인들이 일반 국민과 소통하려고 할 때는 이 점을 특히 더 염두에 두어야 하고, 근본적으로 이런 괴리가 생기는 이유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법조인의 사명은 법을 통해 정의의 존재를 증거하는 일에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법기술자와 진정한 법조인을 구별지을 수 있는 잣대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의와 관련하여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교정적 정의배분적 정의를 언급했다. 사법에서는 교정적 정의가 주로 문제되고, 입법에서는 배분적 정의가 주로 문제된다는 게 정 법무심의관의 말인데, 교정적 정의는 법질서를 훼손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해서 바로잡는 것이라면, 힘없고 없는 사람만 군대 가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여기는 문제나 부자에게 세금을 얼마나 더 많이 거두어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들은 배분적 정의에 관한 것이다.

 

정 법무심의관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는 가치인 자유는 개인적인 가치이지만, 자유를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가란 문제로 넘어가면 이것이 사회적이고 정의에 관한 문제가 된다면서 농업혁명 이후에는 농사지을 땅을 가진 사람들이 남의 땅에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 사람보다 더 큰 자유를 누렸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공장을 가진 사람들이 남의 공장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보다 더 큰 자유를 누린 것과 같이 이제 데이터혁명 시대에는 저크버그처럼 데이터를 날마다 남들에게서 받고 있는 사람이 남들에게 매일 데이터를 주고 있는 사람보다 더 큰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처럼) 부자가 더 많은 자유를 누리듯, 다수가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경향도 있는데, 문제는 정의란 무엇인가도 다수가 정해버리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 “우리 사회에서는 정의가 절대적인 논증으로 결정되기보다, 다수가 정의롭다고 느끼는것이 정의가 되고 또 다수가 불편하게 느끼는것이 불의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정의에 대한 균형 감각을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에 부합하는 쪽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많아진다는 생각도 든다면서 심지어 때로는 다수가 아닌데도 큰 목소리들이 다수의 목소리인 양 여론을 흔들고 정의의 균형추를 옮기려는 시도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정의만큼은 다수결로 정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헌법 제37조 배분적 정의 설명, ‘횡단보도비유로 풀이

 

정 법무심의관은 정의를 정하는 문제의 핵심은 자유를 많이 부여받지 못한 사람에게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 일은 나를 비롯한 법률가들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소수자나 약자를 무조건 우대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을 것이라면서, 아래의 횡단보도 비유를 통해 시사점을 제공했다.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지면, 쌩쌩 달려오던 버스나 트럭 할 것 없이 모든 차들이 일제히 멈춰 선다. 물리적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신호등 하나로 약자인 보행자들은 강자인 차들 앞을 유유히 평화롭게, 이야기도 나누고 손도 잡으며 건너갈 수 있다. 그러나 보행자 신호등의 파란불이 켜지지 않는 동안에는 강자인 자동차들이 약자인 보행자들보다 더 넓은 공간을, 더 오랜 시간 마음껏 달린다.

여기서 강자(운전자)와 약자(보행자)의 입장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며, 즉 누구나 운전할 때는 강자 입장에, 걸어갈 때는 약자 입장에 처하는 순환 구조가 된다. 따라서 강자나 다수에 전반적 우위를 인정하되 필요시 강자의 권리를 제한하여 약자나 소수를 위한 길을 터준다 하여도, 누구도 크게 불만을 갖지 않는다.”

 

정 법무심의관은 이 횡단보도 비유의 핵심은 우리 헌법 제37조에도 이미 마련되어 있다면서 헌법 제37조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때는 기본적으로 법률이라는 다수의 뜻에 따르되, 법률이 소수자의 권리를 제한할 때에는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공익이 제한받는 사익보다 더 커야 정당화되며, 그 경우에도 소수자의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데, 이는 곧 헌법에 깔린 횡단보도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의란 결국 우리 사회 구조와 제도 곳곳에 모두의 공존을 위한 횡단보도들을 설치하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전하며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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